마크로스가 돌아왔습니다. 마크로스 제로가 나온게 2003년 무렵이었으니 무려 4년 만의 신작이로군요. 사실 마크로스라고 하면 한 시리즈가 나오고 나면 언제 신작이 나올지 모르는 그런 시리즈였기 때문에, 마크로스와 함께 리얼로봇물의 대표주자라는 1년 쉬고 다시 1년을 52화 방영하는 건담이랑은 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25년이나 된 작품이 시리즈로는 다섯개(마크로스, 마크로스2, 플러스, 세븐, 제로) 밖에 안 나왔고 이제 여섯번째 시리즈가 나왔으니까요. 정말 천천히 나오는 시리즈이지요.
그 대신 이렇게 과작을 하는 만큼 각각의 시리즈가... 비록 마크로스2라는 지뢰가 있긴 했습니다만, 그것만 제외하면 하나같이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는 점은 대단하지요. 시리즈에 따라 메시지, 영상 연출 등 어느 쪽으로 치우쳐져 있었나 하는 점은 다들 다르지만 말이지요.
뭐 아무튼 마크로스라면 결국 이런 이야기입니다. 하늘을 사랑하는 청년과 노래하는 소녀의 사랑 이야기. 굉장히 낙천적인 설정인 셈이지요. 그래서인지 마크로스의 사람들의 표정은 항상 밝습니다. 전쟁을 하고 있지만 어두운 표정을 짓는 법이 없습니다. 이것은 마크로스가 전쟁을 긍정하거나 군국주의적인 작품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삶을 긍정하는 감독의 의도가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세상도 사람도 점점 망가져가는 모습을 그리는 건담과는 대척점에 있는 작품인 듯도 하지만 결국 사람이 희망이라는 점을 이야기한다는 점에 있어서 리얼로봇물의 양대 산맥이 이 두 작품의 지향점을 같다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테마이기도 한 프론티어라는 단어도 이전 시리즈에서도 여기저기에서 발견되곤 했습니다. 전작의 주인공이었던 넥키 바사라의 노래 중에도 New Frontier라는 곡이 있었지요 아마. 선율도 가사도 너무나 아름다운 곡이라 실의에 빠진 사람이 있다면 꼭 한번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곡이지요. 지겹지도 않은지 이번엔 아예 시리즈의 부제가 프론티어가 되어버리긴 했습니다만. 뭐 어쩌겠습니까. 이것이 마크로스입니다. 마크로스는 사랑과 희망과 개척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번 작품도 배배꼬인 성격의 젊은이가 무한한 자유를 상징하는 하늘을 향해 발키리에 올라 날아오른다는 설정은 여전하군요. 신작의 주인공의 성격은 마크로스 플러스의 이사무를 닮아 있습니다.
이번 시리즈의 메인 히로인으로 보이는 란카입니다. 이제까지 마크로스 시리즈의 히로인이라고 하면 나름대로 유능한 소녀들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노래를 잘 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그런데 이번 시리즈인 히로인 란카는 보는 것과 같이 아이돌을 좋아하는 평범한 소녀입니다. 앞으로 노래를 한다거나 발키리에 오를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이전 마크로스7 다이나마이트의 히로인 엘마 호이리를 보는 것 같습니다.
좌측 : 마크로스7 다이너마이트의 히로인. 엘마 호이리 우측 : 마크로스7 TV판의 히로인. 밀레느 지너스
꿈만 많은 소녀. 이런 소녀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해서 이 시리즈를 이끌어나갈지. 한번 기대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한명의 히로인이 있습니다. 셰릴 노무. 한국어로는 뭔가 괴이한 어감입니다만...;; 아무튼 라스트 네임이 ‘노무’라는 것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마크로스 제로의 히로인. 사라 노무
마크로스 제로의 히로인인 사라&마오 자매의 성이 ‘노무’였기 때문이지요. 전작의 히로인들이 폴리네시아계였고, 셰릴이 금발 벽안이긴 합니다만, 이런 인종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셰릴의 외모는 사라 노무와 굉장히 닮아 있습니다. 이런 셰릴의 외모와 성, 아마 앞으로 셰릴은 마크로스 제로와 프론티어를 잇는 접점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지만 항상 진지하고 고민하던 성격의 사라와는 달리 셰릴은 이렇게 털털하고 덜렁대는 구석도 많은 발랄한 아가씨로 설정이 되어 있습니다. 외모가 같아도 성격이 같지는 않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성격 뿐만이 아니라 셰릴의 노래는 성격보다 훨씬 더 사라와 동떨어져있습니다. 자연과 함께하는 클래시컬한 보이스의 사라와는 달리 셰릴의 주 종목은 락 계열로 보입니다. 마크로스7의 주인공인 넥키 바사라가 생각나는 대목이로군요. 오프닝 멘트가 ‘내 노래를 들어’인 것을 보면 사라가 바사라의 캐릭터를 이어받았다는 것은 거의 확신으로 굳어집니다.
그렇지만 셰릴의 무대가 단순한 바사라의 이미테이션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셰릴의 무대에는 전작에 등장했던 또 하나의 아이돌의 이미지가 겹쳐져 있습니다. 마크로스 플러스에서 등장했던 사이버 아이돌. 샤론 애플입니다.
린 민메이, 밀레느 지너스, 이슈타르 등이 귀여움을 강조하는 일본식 아이돌이었던데 반해서 샤론 애플은 섹슈얼리티가 극단적으로 강조된 서구적인 캐릭터였습니다. 게다가 전 시리즈의 히로인을 통털어 유일한 악역이기도 했군요. (뮨 같은 경우는 이미 아이돌의 범주를 벗어난 아티스트 계열이기 때문에 논의에서 제외하기로 합시다.)
셰릴의 무대에는 샤론 애플의 이런 면모가 많이 담겨있습니다. 홀로그램등을 사용해 화려한 무대를 만들어낸다는 점도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셰릴 = 샤론애플+넥키 바사라+사라 노무
전 시리즈의 가수 캐릭터를 모조리 모아놓은 총집편 캐릭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어라? 그런데 이 이 갈데까지 간 조합 중에서 한 명이 안 보입니다. 어째서일까요? 말할 필요도 없이 그 분은 이미 신성 불가침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의 캐릭터를 변조한다는 것은 이미 마크로스7의 밀레느 지너스, 마크로스2의 이슈타르 등의 사례에서도 겪었다시피 이건 신성모독에 해당한다는 것이 여실히 증명된 바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분께서 영 뒷전으로 물러나 뒷짐만 지고 계시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못합니다. 그래서 마크로스 프론티어의 엔딩 곡은 무려 ‘그 노래’입니다. 20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노래라니. 참으로 대단하군요.
이렇게 복고적인 요소가 가득한 신작 답게 시작 부분에서 브리타이 사령관님의 우악스런 모습과 메가로드급 이민선단의 모습을 짧막하게 보여주는 센스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제 작품의 설정적인 면을 한번 보도록 합시다.
뉴 마크로스급을 주축으로 한 이민선단의 기종과 구성은 20여년 전의 마크로스7의 시기에 비해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뉴 마크로스급에 필적하는 크기의 농경 선박이나 레저 선박 등의 기능성 모듈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기술이 너무 급격하게 발전해버려서 생활 모습은 여전히 20~21세기 그대로 라는 설정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충분히 개연성 있는 설정이기도 합니다. 저 세계. 저런 무지막지한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2050년대 밖에 안 되었으니까요.
마크로스 플러스에서 최신 시험기 YF-19와 YF-21을 궁지에 몰아넣을 정도로 강력했던 인공지능 무인기 고스트입니다. 그렇지만 이번 신작에서는 재밍에 걸려서 10초 만에 편대가 전멸해버리는 수모를 당하고 있군요...;;; 라스트보스에서 야라레메카로의 전락이 이렇게 드라마틱한 경우도 참 드물 것 같습니다.
마크로스의 명물 출격장면입니다. 3D기술의 발전은 여기까지 왔습니다. 디테일하긴 했는데 배경과의 위화감이 심각했던 마크로스 제로의 문제점이 상당히 해결된 것으로 보입니다. 하긴, 이젠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2D인지 3D인지도 분간하기가 힘든 세상이니 이 정도의 작화가 당연해진 세상이기도 합니다만. 아무튼 기술의 발전은 놀랍습니다.
이타노 서커스가 상당히 생략되었습니다. 오히려 저런 탄막 연출은 건담에서 많이 보이던 수법인 것 같습니다만. 빨간 대령님께서는 탄막이 빗발치는 전함 위에 유유히 내려앉으시어 도끼를 휘두르시곤 했지요. 전투가 속도감을 중시하다보니 이타노 서커스의 디테일함이 많이 죽어버렸고 그러다보니 미사일들이 그려내는 곡선의 궤적을 제대로 감상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 참 아쉬운 점인 것 같습니다.
마크로스 제로를 제외하고는 어지간해서 인간 사이의 전쟁을 다루는 법이 없는 마크로스입니다. 이번에도 웬 괴수가 사람을 저리 끔찍하게 죽이는걸 보니 저 쪽도 인간은 아닌 모양입니다. 마크로스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이코패스 집단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이 아니거든요. 결국 이번에도 괴 우주생물과의 전쟁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로봇 애니메이션의 고전적인 테마. 소년은 굴러다니는 주인없는 최신 기체를 주워 탑니다. 항상 주인공의 곁에는 듣도모도 못한 최신 기체가 주인도 없이 버려져 있게 마련이지요. 틀림없이 네 배 이상의 에네르기 게인이 있을 겁니다. 성능의 차이가 전력을 결정하지는 않겠지만 통합군의 발키리는 분명 괴물일 겁니다.(?!)
아무튼 주역 기체가 될듯한 VF-25는 VF-1과 VF-19의 실루엣을 적당히 섞어놓은 듯한 모습니다. 이젠 기체 디자인에서까지 복고 바람이군요.
여기서 잠깐. 이 전투장면에서 이상한 점은 무엇일까요?
뉴 마크로스급 이민선+전함은 전투상황 발생 시에는 시티부분의 뚜껑인 집광판을 닫아서 장갑판으로 사용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유리판으로 된 연약한 상단 부분의 내구력을 보완하는 구실이지요. 그런데 뚜껑을 안 닫았군요. 결국 괴수가 시티 내부로 기어들어오는 참극이 벌어졌습니다. 이건 배틀의 함장이 사표 써서 끝날 일이 아니로군요..(.....)
아무튼 위에서 쓴 것과 같이. ‘프론티어’는 마크로스가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그리고 모두들 기대하고 있는 것들을 모두 담아낸 작품입니다. 아마 올드 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을 것이 틀림 없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제목이 ‘프론티어’인데 이 작품 어디에 ‘프론티어’가 있는가?
이렇게 전작을 답습할 뿐이라면 프론티어라는 이름이 울고 갈 겁니다. 특히 요즘 들어서 마크로스 제로를 뼛속까지 우려먹은 ‘키스담’같은 작품이나 만들어댄다거나 하는 새로운 모습을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요즘의 카와모리 감독이니만치 우려는 더욱 커지지 않을 수 없군요.
과거의 유산으로부터 어떤 프론티어를 개척해 나갈 것인가. 이 점이 마크로스 프론티어와 앞으로 나올 마크로스 시리즈의 과제가 될 것입니다. 제작진들이 어떤 해법을 제시할지 기대가 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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